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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소개

 

경조가 집성촌 소개


 선조는 휘는 시경이며 자는 재호로 윤경의 삼남중 셋째로 1717518丁酉生 公은 가의대부 첨지 및 중추부사를 지내셨으며 성주에서 출생 선산으로 이거하였다가 후에 상주군 외남면에 이거 처음 상주에 이거 입향하신 선조이시다.1775215일을미년 묘는 공성면 용신 산15번지 해좌 상석있음.숙부이은 덕수이씨공의묘 하록 자좌에 상석 있음.

 

 

  • 구릿들마을 유래


 

구릿들마을은 280년전 조선중기 성산배씨 22세손 경조 선조가 이곳에 마을을 처음 개척 정착 하었으며 입향조 경조 선조는 성주에서 출생하여 선산에서 일시 기거 하시다가 외남면 구릿들 마을에 입향 정착하여 후손들이 구릿들배씨 집성촌을 이루며 50여호의 가문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지금은 시류에 따라 많은 종친들이 객지로 떠나고 20여호의 종친들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릿뜰마을 유래을 살펴보며 마을 뒷 전답이 해오라기 백구(白鷗)가 나라오는 향상이라 하여 구래들 혹은 구릿들이라 불러 왔으며 구학(鷗鶴)이 평야에 앉는다 하여 구평(鷗坪)이라고도 불리어 왔습니다.

 

 

성산성주배씨 12세 윤신파 사벌매호촌 집성촌 소개

 

선조(先祖)께서 상주군 매호촌에 입향(入鄕)하게 된 것은 진사공 휘 현()자 할아버지 7대손이시며 청백리(淸白吏) 휘 치()자 할아버지 5대손 되시는 휘 복문(複文)할아버지께서 임진왜란시 세상이 어지러워 성주에서 상주군 은척면에 은둔하여 배() 강양이씨에 장가들어 유일남(有一男 )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시니 공()의 손자 되시는 18세 휘 상홍(尙洪) 할아버지께서 400여년전에 평야지를 찾아 이곳 메악산 아래 매호촌에 자리하여 입향조가 되었다.상홍(尙洪)할아버지는 등무과(登武科)하여 관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하셨으며 향()31세로 타개하시니 그 후손들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한갓 숭조(崇祖)의 정신으로 단합하여 한때는 3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워 살아오다가 지금은 사벌 매호와 예천용궁에 친족들이 살고있으며 시루에 따라 후손들이 객지로 나아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벌매호 가족묘원 조성

 

후손들의 숭조의 염원을 모아 흩어저 있는 조상님들을 한곳으로 모시기로하였으니 2017丁酉閏月에 완성하다.

이곳 매호리 산29번지로 26세 휘 제원 할아버지께서 문중산으로 제공하였으며 휘 제원(悌源)할아버지꼐서는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通訓大夫 司憲府 監察)을 지내셔다.

 

사업비는 당초6,500여만원으로 상주시 중동면 유성석재에서 시공 완성하였다.아직까지 상주 매호 문중의 성지로서 부족하고 가꾸어야할 후손들어 몫은 남아 있습니다.

 

 

 

명암공 배즙(裵楫장군님의 서우재와 마검담(磨劍潭) 마을전설 이야기

 

 

  • 명곡동(明谷洞)이 서우재가 된 이유

 

서우재는 원래 서유재(鼠留在)라고 하는데 서유재는 쥐가 머무르는 곳” 이라는 뜻이다

옛날 옛적 이 마을에는 재앙이 닥쳐 젊은 사람이 죽고 멀쩡하던 사람이 미쳐서 집을 나가고 온 동내는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다.

날이 저물어가는 어느날 이 마을을 지나던 스님(선인)이 어떤 집에서 하룻밤 숙식을 하게 되었다저녁을 먹고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 사실을 전해 듣게 된 후 이튿날 스님이 이곳 산세를 두루 살펴보니 진산(암산코끼리 코의 형상이었다이를 상비산(象鼻山)이라고 했으며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서 내려와 이곳 가야산 계곡물이 모여 흐르는 상비계곡에 코를 박고 있는 형상이었다코끼리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긴 코를 한번 씩 휘두르면 온 동네는 쑥대밭이 되곤 하였다.

 

풍수학의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에 의하면 쥐·고양이··호랑이·코끼리 다섯 동물은 서로 견재하는 관계로 일종의 압승(壓勝풍수라 할 수 있다호랑이가 날뛰는 마을에는 커다란 코끼리상을 만들어 재앙을 방지하고 서우재와 같이 코끼리가 물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재앙은 쥐를 통하여 재압하는 방식을 쓴다쥐가 비록 작지만 코끼리 코안에 들어가서 괴롭히면 코끼리는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처지이니 아무리 갈증이 나도 마음대로 코를 휘두를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이 동네 이름을 서유재라고 지어주고 나니 그 후에 재앙이 사라지고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다오랜 세월 속에 서유재가 서우재로 상비산이 쌩버리로 명칭을 바꿔부르게 되었다이제 그 계곡에 저수지가 생기고 지금을 뚝을 높여 계곡까지 물이 차오르게 되어 코끼리는 물을 얻기 위하여 더이상 많은 기운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마검담(磨劍潭)의 전설

 

지금은 저수지 뚝으로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옛날에 이곳엔 수령이 600~700년이 된 고목 느티나무가 있었다나무를 중심으로 커다란 돌로 단을 쌓아 나무그늘에서 행인들의 땀을 식혀주는 쉼터로 주위엔 평평한 장소가 있는 곳이었다.

그 옛날 이곳에 배즙(裵楫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의병을 훈련시키셨는데가야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에 칼을 갈았다하여 마검담(磨劍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지금은 저수지 시설 공사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게 안타깝지만그 후손들은 지금도 450여년을 이 고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